
정비석
국내인물문학가현대문학가소설가
출생1911년
사망1991년
출생지평안북도 의주
데뷔년도1936년
데뷔내용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부 당선
인물소개
1911-1991. 정비석의 본명은 정서죽이다. '비석'은 스승이었던 김동인이 지어준 이름이다.. 1911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32 일본 니혼 대학 문과 중퇴. '매일신보' 기자 근무. 1935 시 '도회인에게', '어린것을 잃고'와 소설 '여자', '소나무와 단편나무' 말표. 1936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소설 '졸곡제' 입선. 1937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성황당' 당선. 일제 강점기에 친일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 간사 역임. 해방 후 '중앙신문' 문화부장 역임. 서울신문에 '자유부인'연재, 당시 지식인 계층의 대표 격인 교수와 그 부인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타락상을 드러내고 있어 사회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자유부인 논쟁'으로 인해 서울신문의 판매부수는 세 배로 뛰어 오랐으며 '자유부인'은 국내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1976 조선일보에 장편 '명기열전' 연재. 1980 장편 '민비' 발표. 1981-1989 한국경제신문에 장편 '손자병법', '초한지', '김삿간 풍류 기행' 연재. 소설집으로 '청춘의 윤리', '성황당', '고원' 등 80여권이 있고 수필집으로 '비석과 금강산의 대화', '노변정담' 평론집으로 '소설작법' 이 있다. 1991 서울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학력
- 1932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문과 중퇴
수상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소설 '졸곡제' 입선
-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성황당' 당선
경력
- '매일신보' 기자 근무
- 일제 강점기에 친일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 간사
- '중앙신문' 문화부장
- 서울신문에 '자유부인'연재 - 국내 최초의 베스트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