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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박영호

국내인물오른쪽 화살표 아이콘교육가/인문학자오른쪽 화살표 아이콘인문학자

출생1890년

사망1981년

출생지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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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다석 사상의 권위자이다.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0여 년 동안 다석(多夕)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다. 성천(星泉)문화재단의 다석사상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성천아카데미에서 다석사상과 함께 노장(老莊)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1950년 6월 지진해일처럼 갑작스레 밀려드는 북한 인민군의 침략을 목도한 고교생 박영호는 약관의 나이에 학도의용군에 자원하였다. 그러나 시신이 넘쳐나고 피로 흥건한 아비규환의 참상을 목격한 뒤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신경쇠약으로 매일같이 불면의 밤을 보냈다. 칼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를 읽어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고 하느님이 계심을 알고 신앙에 눈뜨면서 극기복상(일상으로 돌아옴)하였다. 맑아진 정신으로 톨스토이의 전집을 비롯하여 철학종교서적을 열렬히 탐독하였다. 그때 '사상계'에 실린 함석헌의 글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읽고 감동하여 함석헌과 문통을 하게 되었다. 농사와 신앙의 아슈람을 세워 공동생활을 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하여, 함석헌이 있는 천안 씨알농장에 합류하였다. 함석헌으로부터 성경을 비롯한 고문진보 등 고전을 3년 동안 배웠다. 이후 함석헌의 '실덕(失德) 사건'을 계기로 함석헌의 문하를 나와, 류영모의 서울 YMCA 연경반 금요강의를 듣게 되었다. 거기서 노자, 장자 등 동서고전을 5년 동안 배웠다. 연경반 강의로도 성이 안 차 류영모 집으로 가서 배우기도 하였다. 하루는 서울 구기동의 류영모 집으로 찾아간 박영호에게 스승 류영모는 '단사(斷辭)'를 하라며, 자기를 찾아오지도, 편지도 하지 말라 했다. 정신적 자립을 하라는 것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스승 류영모와 결별을 한 박영호는 5년에 걸쳐 '새 시대의 신앙'을 저술하여 스승 류영모에게 바쳤다. 그리하여 스승 다석으로부터 마침보람(졸업증서)를 받아 제자로 인가되었다. 또한 스류영모의 전기를 쓰도록 허락을 받아 《진리의 사람 다석 류영모》 등 '다석 사상'에 관한 저서를 10여 권 넘게 썼다. '문화일보'에 다석사상에 관한 글을 325회 걸쳐 연재했으며, 이를 보완하여 <다석사상전집>을 간행했다. 그 밖의 지은책 및 옮긴책으로는 <중용 에세이>, <다석어록>, <노자>, <다석추모문집>, <장자>, <다석 류영모 명상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