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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신채호

국내인물오른쪽 화살표 아이콘교육가/인문학자오른쪽 화살표 아이콘역사학자

출생1880년

사망1936년02월21일

출생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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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언론인으로 민족 사관을 수립하고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충청남도 대덕군 정생면 익동 도림리(현재 대전 중구 어 남동)에서 유생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7세에 아버지를 잃고, 15세에 형을 잃었다. 조부가 운영하는 사숙에서 6세부터 한학을 배워 10세 때 시를 짓고, 12〜13세에 사서삼경을 독파했다. 조부의 소개로 18세에 한말 유학자이자 학부대신 신기선의 사저를 통해 신구서적 섭렵, 새로운 학문을 익혔고 이때 개화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1898년 신기선의 추천으로 19세에 성균관에 입학, 백암 박은식의 유학 경향을 접하며 점차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1905년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의 뜻을 버리고〈황성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입신, 애국계몽운동 이론가로 문명을 떨쳤다. 이후 1906년〈대한매일신보〉 논설위원으로 참여, 얼마 뒤 주필이 되어 일제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 행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온 국민이 국권 회복에 진력할 것을 계몽했다. 1907년 신민회 창립위원으로 참가. 1909년 윤치호, 안창호, 최남선 등과 청년학우회 발기, 구국운동단체에 가입하여 실천적인 애국계몽운동을 추진했다. 또한 주시경과 함께 여성잡지〈가영잡지〉 편집, 부인층 계몽에도 힘썼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 1923년 의열단의〈조선혁명선언〉을 작성했다. 1927년 무정부주의동방연맹에 가입하고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 북경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염출하는 등 직접 행동에 옮겼다. 5월, 그 연루자로 일경에게 체포되어 10년형을 받고 1936년 2월 21일, 뤼순감옥에서 옥중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했다.


수상

  • 1962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경력

  • '황성신문'에 논설 기고
  • 1907신민회에 참여
  • 1919임시정부에 참여
  • 1926'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여 활동
  • 1929일제에 체포, 복역중 뤼쑨 감옥에서 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