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
국내인물문학가고전문학가
출생1869년02월27일
사망1927년05월11일
출생지경기도 포천
인물소개
인평대군 10대손으로 아버지 철용(哲鎔)과 어머니 청풍김씨(淸風金氏) 사이의 맏아들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재만은 대원군의 참모로 활동하다 1883년 민씨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워 19세에 과거 초시에 합격했으나 신학문과 접하면서 신소설 창작에 뜻을 두었다. 1903년 양기탁·주시경·노익형과 광무사를 조직해 국채보상의연금 모금운동을 벌였다. 1908년 대한협회 교육부 사무장 및 평의원으로 활동했고, 기호흥학회에 가입해 기관지 〈기호흥학회월보〉 편집인을 맡는 한편 기호학교 교감을 역임했다. 한말에는 애국계몽운동에 기여했으나 한일합병 이후 일제의 관직인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국악에 조예가 깊어 〈춘향전〉·〈심청전〉·〈흥부전〉 등의 판소리계 소설을 〈옥중화〉·〈강상련〉·〈연의 각〉 등으로 개작했다. 1927년 뇌일혈로 죽었으며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 안장되었다. 그는 이인직과 더불어 신소설 대표 작가이며, 봉건적 백성을 근대적 국민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국권회복의 방법이라 주장했다.
경력
- 1908대한협회 교육부 사무장 및 평의원
- 기관지 〈기호흥학회월보〉 편집인
- 기호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