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야
국내인물문학가현대문학가소설가
출생1900년
사망1976년
출생지함경남도 함흥
데뷔년도1925년
데뷔내용《조선문단》 단편 「그날 밤」
인물소개
본명은 한병도(韓秉道). 1925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단편 「그날 밤」을 발표하며 등단하였으나 아버지의 사망 후 1926년 만주로 이주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는 이듬해에 귀국하여 조명희, 이기영과 깊이 교우하였으며 곧 카프에 입단하였다. 이후 「프롤레타리아 예술선언」 「문예운동의 실천적 근거」 등의 평론을 발표하며 카프 내부의 논쟁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이기영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창설하고 위원장을 맡았으나 곧 임화 중심의 조선문학가동맹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월북했다. 1947년 북조선문학총동맹 중앙위원장을 맡은 뒤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특히 김일성의 정권 창출에 기여하여 정치적 중심에 섰다. 또 북한문학의 전범이 되는 작품들을 집필해 북한 문단의 초기 활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1953년 무렵 임화, 김남천, 이태준 등 남로당 계열 문인들의 숙청과 비판에 앞장섰으며, 그 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신 역시 숙청되어 1962년 자강도의 수용소로 추방되었다가 1976년 고향 함흥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