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국내인물방송/공연예술인영화인영화감독
국내인물방송/공연예술인영화평론가/칼럼니스트
출생1959년
출생지서울특별시
인물소개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다니면서 서울에 대한 지리감각을 익혔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를 보고 난 후 두 달 동안 낙타만 그렸다. 또 하나는 호금전의 '용문객잔'. 일주일 내내 한 번도 빠짐없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 후 무협 영화와 소설에 빠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철의 '심야의 결투'를 본 후 급기야 학교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또 봤다. 영화에 대한 첫 번째 애정고백. 중학생 때 이미 꼭 봐야 할 영화 500편 리스트를 작성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금지된 장난'을 보러 프랑스 문화원에 갔다가 우연히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를 보고 쇼크를 받았다. 영화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때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 것이다, 라는 아주 명징한 사실을 깨달았다. 서점 서가에 꽂힌 '타고르 전집'을 '고다르 전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고다르의 환영에 시달리며,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영화란 운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영화를 보고, 글을 계속 쓰다가 대학에 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영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났고 학보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영화평을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영화글을 쓰기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 3학년 때 쓴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 평론은 지금의 악명(?)을 고스란히 예고한다. 1989년에 창간한 '로드쇼'의 편집차장을 시작으로,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에 태어나 '90년대 시네필 문화'를 낳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키노'를 이끌며 영화 비평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16년 동안 '말'의 최장수 필자였고,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출연하여 긴 호흡의 문어체 화법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영화연구1: 임권택',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가 있고,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을 책임편집했다. 2009년 겨울, 서울 청계천을 걷고 또 걸으며 첫 번째 장편영화 '카페 느와르'를 찍었다.
학력
- 성균관대학교
경력
- 1989'로드쇼'의 편집차장
- 1992 ~ 2007'말'의 최장수 필자
-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출연
- 2007 ~ 2009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집행위원장
- 프로그램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