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칠
국내인물문학가현대문학가시인
국내인물문학가현대문학가수필가
출생1917년
출생지서울특별시
인물소개
191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20살 무렵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했고, 1938년 조선자연과학사상사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학비 조달, 마르크스주의 연구, 일인 좌익운동 경력자들과의 접촉 등으로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고심했다. 이 무렵 신건(申建)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소설대표작집'을 출판하는 등 우리나라 근대소설을 편역해 일본에 소개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42년 초, 일본 치안유지법으로 피검되어 검사 구류로 재판 없이 1년간 구금되었다. 이후 조선으로 강제 추방돼 해방 때까지 경성사상보호관찰소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다. 해방공간에서는 경제잡지 '조선경제' 발간에 참여했고, 남로당에 참가한 뒤에는 이론·조사 부문에서 일하는 한편 '국제평론', '조선산업노동조사시보' 등 당 외곽기관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전쟁 후 합법공간에서는 문화선정성에 소속됐으며, '자강도 인민보' 논설기자로도 잠시 있었다. 그러나 주로 남반부 해방을 위한 파견 인원에 속해 활동했으며, 남파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962년 봄 10년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사회안전법이 제정되면서 1975년 다시 투옥되었고, 1988년 이 법이 폐지되면서 72세에 비전향으로 출옥했다. 석방된 뒤 시국 관련 논문을 발표해왔으며, 1996년 뇌졸중으로 대외 활동을 중단한 뒤에도 자전적 수기인 '사각지대에서'의 집필을 계속했다. 2000년 비전향장기수 송환 때 분단의 아픔을 남쪽의 민중과 함께한다는 뜻으로 남쪽에 남는 길을 택했다. 저서로는 편역서 '조선소설대표작집'(1940, 일본 敎材社), 옥중 시조집 '필부(匹夫)의 상(像)'(2002, 개마서원), 시집 '흐르지 않고 고인 물이'(2002, 개마서원) 등이 있다.
경력
- 경제잡지 '조선경제' 발간에 참여
- '국제평론', '조선산업노동조사시보' 등 편집위원으로 활동
- '자강도 인민보' 논설기자
- 1952 ~ 1962남파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10년간 투옥
- 1975 ~ 1988사회안전법 제정으로 재 투옥, 72세 비전향으로 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