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수
국내인물문학가현대문학가시인
국내인물문학가현대문학가수필가
출생1908년
사망2001년
출생지함경남도
데뷔년도1933년
데뷔내용시 〈나의 가르노〉 《선봉》신문 발표
인물소개
1908년 함남 이원 태생으로 만주를 거쳐 192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또끄로 건너갔다. 1933년 첫 시 〈나의 가르노〉가 블라디보스또끄 《선봉》 신문에 발표되었다. 1936년 원동고려사범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937년 가을 소련의 정책에 따라 카작스탄 크즐오르다로 강제 이주되었다. 크즐오르다로 옮겨온 원동고려사범대학 벽보신문에 게재한 1937년 강제 이주 열차에서 창작한 시 〈밭 갈던 아씨에게〉 때문에 ‘인민의 원수’로 몰리어 1938년부터 1959년까지 21여 년 동안 소련 북극 아르한겔스끄(Архангельск) 수용소 등에서 강제노역을 하였다. 스딸린에게 보낸 재심사 청원서 덕분에 검찰이 범죄 구성 요소의 부재를 이유로 1957년 강태수 사건을 기각하였다. 1959년 수용소에서 석방된 후 크즐오르다로 돌아와 배전소 등에서 일했으나 마지막에는 크즐오르다 《레닌기치》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정년퇴직하였다. 1920-50년대 정치적 탄압에 의한 희생자의 권리 회복에 관한 법령에 의해 1997년 복권되었으나 만년에 시력을 잃고 혼자서 어렵게 지내다가 2001년 크즐오르다 자택에서 사망했다. 문학 유산으로 고려인 신문 《선봉》, 《레닌기치》, 《고려일보》와 고려인 문학 작품집 등에 발표된 200여 편의 시와 소설 및 1981년에 알마-아따 작가출판사에서 출간된 러시아어 번역 시 선집 《길을 가면서》(В ДОРОГЕ)가 있다.
경력
- 《레닌기치》 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