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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평

언론인정치/외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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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데뷔1906≪태극학보≫ 3월호<자유론> 발표

인물소개

1888~1939 평북 의주 출생. 사학자, 언론인. 호는 호암湖巖. 일평은 자字. 17세까지는 의주에서 주로 한학을 공부하였다. 18세가 되던 해에 일본 도쿄로 가서 아오야마학원 중학부에 1학년 청강생으로 들어갔지만 곧 그만두고 간이 강습소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였다. 1906년 10월에 <자유론>이란 글을 ≪태극학보≫ 3월호에 처음 발표. 이어서 1907년 7월에는 같은 ≪태극학보≫ 11호에 <진보의 삼단계>를, ≪태극학보≫12호에는 <한국의 장래 문명을 논함> 등을 발표하였다. 1908년 귀국하여 평양의 대성, 의주의 양실, 서울의 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최남선이 운영하던 광문회에 관여하였다. 1910년 국권피탈이 되자 1911년에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해 공부하며 안재홍, 김성수, 장덕수, 윤홍섭 등과 교유하였다. 1912년 중국 상하이로 가서 신규식 등이 국권 회복을 위해 조직한 단체인 동제사에서 독립운동에 가담. 1919년 3월 12일에 독립 선언서를 만들어 보신각에서 낭독하고 이로 인해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0년 동아일보에 한시 <삼각산>을 발표하고, 9월에는 <이충무전>을 번역해 잡지 《서울》에 게재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중화해 소개하는 글을 집중적으로 쓰기 시작하였다.<조선인과 국제안>(1929), <천고비극의 주인공 백제 의자왕의 최후>(1929), <여성의 사회적 지위>(1930), <조선사에 나타난 국제적 결혼과 정략>(1930), <조선 문화에 대한 일고찰>(1930), <예술과 로맨스>(1930), <사안으로 본 조선>(1933), <세계문화의 선구>(1933), <사외이문>(1933), <한미 관계 50년사>(1934), <사상에 나타난 예술가의 군상>(1935), <고증학상으로 본 정약산>(1935), <조선 문화사의 별항>(1938), <문화적 발굴>(1938) 등을 집필하였다. 열정적으로 집필 활동을 진행하던 중 1939년 4월 3일 갑자기 급성 단독으로 별세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사후 『호암사화집』(1939), 『호암전집, 전3권』(1939), 그리고 『호암전집』(1940)이 재간행되고 『소년 역사 독본』(1940)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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