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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철

대학/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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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KBS를 비롯한 방송사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언론인 출신이다. 서울법대 출신으로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외국 대학원에 유학까지 한 지성파 기자는 그 당시에는 정말 흔치 않았다. 현재는 경기대 교수 겸 시민단체인 민생경제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고,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문화관광전문위원이기도 하다. 언론인 시절 정치부 기자로서 세 차례나 대통령 직접 선거를 취재하는 더없는 행운을 누리고, 기수를 뛰어넘어 선배들보다 먼저 영국의 명문대학 브리스틀 대학에 해외 장기 연수를 다녀오는 등 엘리트 언론인 코스를 밟았다. 재정경제부를 담당할 때에는 120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의 대표가 될 정도로 보스 기질도 있다. KBS 가 한창 어렵던 시절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했고, 방송 환경이 급변하던 2000년 전후 IPTV를 비롯한 방송통신 융합 업무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일찍부터 TV 뉴스의 시스템화에 눈을 떠 방송 뉴스 제작에 관한 연구와 집필을 꾸준히 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종편사 초기의 뉴스 시스템 구축을 주도하고 기자와 앵커의 교육 훈련을 담당했다. 인프라가 열악한 종편사에서 선거방송 기획단장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치러냈다. 그는 1960년 동방추로지향(東方鄒魯之鄕)으로 칭해지는 경북 안동에서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추는 맹자가 태어난 곳이요, 노나라는 공자가 태어난 곳이니 성현이 태어난 고장이라는 뜻의 자부심 가득한 표현이다. 조선 왕조 시절 의성 김씨 선조들은 주로 현대의 언론기관이라 할 수 있는 삼사(三司)에 출사했는데, 그가 방송에 투신한 것이 집안 내력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초년병 시절부터 ‘점잖고 예의바른 기자’와 ‘독종’이라는 다분히 상반되는 평가를 동시에 받은 것도 그 연장선상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인간관과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방송통신대학 조교로 일하던 1980년대 중반으로 비교적 늦은 편이다. 당시 방송통신대학에는 강경선 교수가 부임하면서, 1990년대 이후의 사법개혁을 주도하던 ‘서울 법대 72학번’의 아지트가 되었는데, 그때 김구철이 자주 접한 법대 72학번은 강경선 교수를 위시해 김순태(형법) 이원희(세법), 천정배(정치인), 서현(전 판사), 전원배(헌법), 곽노현(법철학)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의 영향으로 김구철은 앰네스티 언론인위원회 부회장,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인권과 사회정의, 정치와 언론, 언론 개혁 등에 적극 참여해 왔다. 그의 관심은 또 우리말과 글 바르게 쓰기, 방송통신 융합, 국가 발전 전략 등을 거쳐 선비 문화에 이르고 있다. 역서 『새로운 영국의 희망 토니 블레어』(1997)을 비롯해 언론인으로서는 드물게 다방면에 걸쳐 많은 저서를 펴냈다. 저서로는 『김구철의 대선전략』(2017), 위기 관리 사례 연구집인 『제국의 몰락』(2013), 방송기자 입문자를 위한 『방송뉴스 이렇게 취재한다』(2008) 『TV뉴스 이렇게 취재한다』(2005) 『첨삭지도 TV뉴스 리포트』(199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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