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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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1625년
사망1699년
출생지중국
인물소개
1625년 산동성 제남부 출생이다. 명나라 사대부 왕충추(王忠推)의 아들이며, 초명은 봉강(鳳崗)이다. 1636년 도적떼의 약탈을 피해 평안도 앞바다의 가도(椵島)로 피신했다. 1637년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군이 가도를 점령했을 때 사로잡혀 심양(瀋陽)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끌려와 그곳에 머물던 봉림대군을 만났다. 1645년 봉림대군이 풀려나자 양복길(楊福吉)ㆍ풍삼사(馮三仕)ㆍ왕미승(王美承)ㆍ배삼생(裵三生)ㆍ왕문상(王文祥)ㆍ정선갑(鄭先甲)ㆍ황공(黃功) 등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다.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의 회복을 염원하며 북벌 논의에 참여하였다. 평생토록 명나라 신하로서 정체성을 간직하며 살다가 1699년 서울 어의동 황조인촌(皇朝人村)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