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림
인물소개
190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춘실(李春實)로 숭현소학교를 나와 숭의여자중학교에서 유아 교육을 공부하였고 1919년 14세의 나이로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항일운동에 열심이었던 오빠들이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전단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평양의 학생 조직인 역사문학연구회에 참가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청진의 유아원에 근무하면서 1927년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오빠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무장 항일 투쟁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다. 이화림도 25살이던 1930년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할 길을 찾다가 김두봉의 소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화림은 한인애국단에 들어가 이봉창, 윤봉길 등과 활동하였다. 김구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일제의 밀정을 색출하는 일에도 관여하였다. 임시정부 시절 이화림은 ‘동해’라는 가명으로 불렸다. 중·일전쟁 발발 후 충칭(重慶)에서 활동하다가 1939년 3월 구이린(桂林)으로 가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朝鮮義勇隊 婦女服務團)의 부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타이항산(太行山) 항일근거지와 옌안(延安)에서 활동했다. 옌안 시기에 중국의과대학에 입학해 학습하던 중 해방을 맞았고 학업을 마친 후에는 옌볜으로 가 의료활동과 공직활동으로 조선족 권익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북한군으로 파견되어 의료 지원 활동을 했다. 북한군으로의 활동은 이화림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결정적 장애요인이 되었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에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10년간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말년의 여생은 중국의 다롄에서 보냈다. 1999년 2월, 모든 재산을 조선족 사회에 기부하고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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