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리버모어Jesse Livermore
국외인물경제/금융/기업인증권/주식투자전문가
출생1877년
사망1940년
출생지Massachusetts
데뷔년도1939년
데뷔내용'How To Trade In Stocks'
인물소개
20세기 초 월스트리트를 주름잡은 당대 최고의 투기자로, 대규모 공매도 공세로 큰돈을 벌었다고 해서 월스트리트의 “큰곰”으로 불렸다. 1907년 패닉과 제1차 세계대전, 1920년대의 역사적인 초강세장과 1929년의 주가 대폭락 사태, 19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는 동안 숱한 성공 신화를 만들어냈고 여러 차례 파산하는 시련도 겪었다. 에드윈 르페브르가 1922~23년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잡지였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연재한 《제시 리버모어의 회상REMINISCENCES OF A STOCK OPERATOR》을 통해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는데, 1923년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월스트리트를 움직이는 인간의 본성을 너무도 정확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877년 뉴잉글랜드의 시골마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리버모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가 마련해준 5달러를 들고 보스턴으로 가 페인 웨버 증권회사에서 시세판 사환으로 일했다. 이 무렵 유사 증권회사인 버컷샵에서 3.12달러를 번 것을 계기로 주식 투기에 눈을 떠 15세 되던 해 1000달러를 벌었다. 그 뒤 투기에 전념해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25만 달러라는 큰 수익을 올렸다. 1907년 패닉 때는 공매도로 300만 달러를 벌었는데, 당대 최고의 은행가였던 J.P. 모건까지 나서 그에게 공매도 자제를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29년 10월 말 주가 대폭락 때는 '큰곰'다움 매도 공세를 펼쳐 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리버모어는 철저히 시장의 추세에 따라 매수하거나 공매도하고, 과감하게 거래량을 늘려나가는 트레이딩 기법으로 유명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 대중들의 정서와 거스르는 포지션을 취했고, 피라미딩 방식으로 포지션을 쌓아가 수익은 크게 하고 손실은 작게 가져갔다. 그러나 그는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와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해 공식적으로만 네 번 파산했다. 세 번은 오뚝이처럼 재기해 앞선 파산선고에 따라 더 이상 갚지 않아도 됐던 빚을 원금과 이자까지 전부 갚았다. 하지만 1934년 3월 7일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파산한 뒤로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는데, 이 때 리버모어의 자산은 18만 4900달러, 부채는 225만9212달러에 달했다. 리버모어는 1939년 투기 인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이 책 '주식 투자의 기술'을 쓰기 시작해 이듬해 3월 출간했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당시 주식시장이 워낙 가라앉았던 데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해 책 판매는 그의 기대에 못 미쳤다. 세 번의 실패한 결혼 생활과 과도한 음주, 여기에 말년에는 우울증까지 겹쳐 1940년 11월 28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 번째 부인에게 남긴 유서에는 '나는 실패자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력
- 보스턴의 한 증권회사 시세판 담당자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