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
중국작가
인물소개
자(字)는 마힐(摩詰)이고, 당나라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성)의 하급 관료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다재다능하였다. 집안의 맏아들이었던 왕유는 불행하게도 어린 나이에 이미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여러 동생들과 함께 가난하게 자랐다.출중한 문예 재능에 힘입어 귀족 사회의 호감과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개원(開元) 9년(721) 21세에 진사가 되어 궁중의 음악을 관장하는 태악승(太樂丞)에 올랐으나, 같은 해 한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사창참군(濟州司倉參軍)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왕유는 제주에서의 임기를 마친 얼마 후 다시 기수(淇水) 일대에서 벼슬하다가 오래지 않아 사직하고 현지에서 은거하였으며, 개원 17년쯤 장안으로 돌아와 한거(閑居)하던 중 31세경에 부인과 사별하고 평생을 홀로 살아가게 된다. 왕유는 숙종(肅宗)이 그의 내심의 충정을 인정해 특사를 내림으로써 화를 면하였다. 이후 그의 여생은 오직 자책과 보은의 나날이었으며, 상서우승(尙書右丞) 벼슬자리에서 세상을 떠나니 후세에 그를 ‘왕우승(王右丞)’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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