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페르디낭 셀린Louis-Ferdinand Celine
국외인물문학가현대소설가프랑스작가
출생1894년05월27일
사망1961년07월01일
출생지프랑스
인물소개
본명은 루이페르디낭 데투슈(Louis-Ferdinand Destouches). 1894년 5월 27일 쿠르브부아에서 태어났다. 루이 데투슈는 파리의 파사주 쇼아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루부아 소공원과 아르장퇴이 가에 인접한 공립학교 및 튈르리 가의 생조제프 학교에 다녔다. 졸업 후에는 독일과 영국에 잠시 체류했다. 이후 파리와 니스에 위치한 여러 보석상에서 수습생으로 일한다. 1912년 입대해 랑부예에 주둔하는 기갑부대 제12연대에 배치받았으며 1914년 플랑드르 지방에서 부상을 입어 무공훈장과 함께 신체장애를 얻게 된다. 얼마간의 런던 체류 후 1916년 카메룬의 옛 독일 식민지 지역에 교역 중개인으로 지원하지만 말라리아에 걸리는 바람에 1917년 프랑스로 돌아온다. 1919년 대학 입학 국가고시를 치른다. 이어 렌과 파리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1924년에 의학박사 논문 심사를 통과한다(「필리프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의 생애와 저작」). 1924년에서 1928년 사이에 국제연맹에서 일하며 미국과 서아프리카에 파견된다. 1927년부터 클리시 시 보건소에서 의사로 근무한다.1932년, 셀린이라는 가명으로 『밤 끝으로의 여행』을 발표해 르노도상을 수상한다. 1936년 두 번째 소설 『외상 죽음』이 나온다. 구소련을 방문한 후 『메아 쿨파』를 발표하고, 이어 1937년과 1938년에 『학살을 위한 바가텔』과 『시체들의 학교』를 낸다. 파리 서쪽에 위치한 도시 생제르맹앙레에 정착하나 그즈음 전쟁이 선포된다. 마르세유와 카사블랑카를 오가는 셸라 호의 선내 의사 자격으로 승선하지만, 배는 영국 정찰선과 충돌하여 정찰선을 지브롤터 앞바다에 침몰시킨다. 이 사고로 파리에 되돌아와 당시 동원령을 받은 사르트루빌 시 의사의 후임을 맡는다. 1940년 피난기에 환자들을 이송하는 구급차를 책임지게 되고, 이어 브종 시 보건소에서 일한다. 1941년에 『꼴불견』을, 1944년에 『꼭두각시 밴드』를 출판한다. 1944년에서 1951년 사이, 망명길에 올라 독일과 덴마크에 체류하다 전쟁이 끝날 무렵 덴마크에서 체포, 투옥된다. 프랑스에 돌아온 뒤에는 뫼동에 정착해 집필을 재개했으며, 이 시기에 『다음번을 위한 몽환극』과 독일 3부작 『성에서 성으로』, 『북쪽』, 『리고동』을 쓴다. 1961년, 갈리마르에서 『Y 교수와의 인터뷰』가 출간된다. 1961년 7월 1일 사망한다.
수상
- 『밤 끝으로의 여행』으로 르노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