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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국외인물오른쪽 화살표 아이콘방송/공연예술인오른쪽 화살표 아이콘연극인오른쪽 화살표 아이콘희곡/극작가

출생1777년10월18일

사망1811년11월21일

출생지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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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1777년 10월 18일 오더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연대장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시기에 활동한 개성이 강한 천재 극작가이며 산문작가, 서정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에는 이해되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희곡의 경우에도 일곱 편의 완성된 희곡 중 <슈로펜슈타인 가족>, <깨어진 항아리>, <하일브론의 케트헨> 등 세 편만이 공연되었을 뿐이다. 1802년부터 1807년까지 클라이스트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클라이스트의 생애에서 가장 위기였던 이 5년 동안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에 독일 희극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는 <깨어진 항아리>가 완성되었고, 이성으로는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디오니소스적 열정으로 아폴로적 조화를 추구하는 독일 고전주의의 규범을 완전히 깨뜨린 비극 <펜테질레아>가 프랑스 감옥에서 집필되기 시작해 석방 후 드레스덴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이 처한 극단적 한계상황을 엄밀하면서도 율동적이고 응축된 언어로 표현한 불후의 단편인 <미하엘 콜하스>, <O… 후작부인>, <칠레의 지진> 등이 집필되기 시작했다. 1811년 11월 21일 클라이스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헨리에테 포겔과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반제 호숫가에서 클라이스트는 먼저 31세인 포겔의 심장을 쏘았고, 이어서 34세인 자신의 머리를 쏘았다. 두 사람은 두 개의 관에 입관되어 하나의 무덤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