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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야마 도시유키

일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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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1930년 경성(서울)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9세 때 일본으로 돌아온 하와이 이민 2세였고, 부친 가지야마 유이치(梶山勇一)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1926년부터 경성부 토목과 기수(技手)로 근무했다. 고위 관료는 아니지만, 조선에서는 현지 수당도 있고 물가도 싸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938년에 성동구 신당정 349에 신축한 저택에서 가족은 1945년 귀국 때까지 살았다. 가지야마는 1936년 남대문 공립 소학교에 들어갔고, 1943년에는 경성중학에 입학했다. 1944년 학도병 동원령에 따라 인천 육군 조병창에서 99식 보병총 제작에 종사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성욕이 있는 풍경〉 등에 반영돼 있다. 8.15가 되자 〈밀항선(闇船)〉의 내용처럼 일본인 저택에 대한 약탈이 있었으나 부친은 수재가 났을 때 이웃을 돕는 등 조선인과 친밀하게 지내 피해가 없었고, 귀국 시에는 떡까지 건네받았다고 한다. 이후 히로시마 제2 중학을 거쳐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히로시마대학) 국어과에 입학해 동인지 활동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원폭’과 ‘이민’‘조선’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이조잔영〉을 발표한 뒤인 1965년 2월 24일 아내와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박경리, 선우휘, 유주현, 한운사, 이진섭 등 한국 작가들을 만나 교류했다. 가지야마는 귀국 후 동아일보에 보낸 글에서 ‘어릴 때 몰랐던 사실을 재일교포를 통해 듣게 되어,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는 뜻도 곁들여 〈족보〉와 〈이조잔영〉을 썼고 앞으로도 계속 쓸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에도 가지야마는 한일 문화 교류에 힘을 쏟았다. 1968년에는 한운사, 이진섭을 초청해 ‘한국 작가와의 만남’을 열었고, 일본 작가, 언론인과 함께 방한해 판문점과 불국사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1975년 5월 작품 취재차 홍콩을 여행하던 중 45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별세한 그의 묘에 『이조잔영』(고단샤 출간본)이 합장되었을 정도로, 식민지 조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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