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1. 홈 브레드크럼 아이콘slash 아이콘
  2. 인물&작품
  3. slash 아이콘
    메인드롭다운 닫힘 아이콘

이하라 사이카쿠

국외인물오른쪽 화살표 아이콘문학가오른쪽 화살표 아이콘고전문학가오른쪽 화살표 아이콘일본작가

출생1642년

사망1693년08월10일

출생지일본

공유하기 아이콘

인물소개

일본 근세 에도 시대의 작가 중 문학사적으로 가장 비중 있고 개성적인 면모를 지닌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
사이카쿠의 본명은 히라야마 도고(平山藤五), 호는 초기에는 가쿠에이(鶴永)라고 했으나 사이카쿠(西鶴)와 사이호(西鵬) 등의 호도 같이 사용했다. 사이카쿠는 오사카 지역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5세 무렵부터 하이카이를 익혀 21세경에는 하이카이의 시적 우열을 가려 평점을 매기는 일종의 심사 위원 역할인 덴샤(点者)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하이쿠(俳句) 작풍은 처음에는 교토를 중심으로 한 유력 하이쿠 작가들의 동인 모임 중 하나인 마쓰나가 데이토쿠(松永貞德) 하이단(俳壇)의 흐름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또 다른 유력 동인 모임인 단린 하이단(談林俳壇)의 중심인물 니시야마 소인(西山宗因)과 가까워져 1670년대가 되면 그의 하이쿠는 이른바 단린풍(談林風)으로 변모해 갔다. 특히 자파의 신풍을 고취하는 ≪이쿠타마 1만 구(生玉萬句)≫(1673) 이후, 그 화려한 활동에 의해 단린 하이카이(談林俳諧)의 대표 존재로 주목받았다. 1675년에는 망처(亡妻)의 추모를 위해 하루 만에 1000구를 지어 ≪하이카이 독음 1일 1000구(俳諧獨吟一日千句)≫를 간행하는 개성적인 면모를 보였고, 이후 그의 하이카이시(俳諧師)로서의 활동은 정해진 시간에 화살을 쏘아 대듯 많은 하이쿠를 짓는 것을 주안으로 하는 야카즈 하이카이(矢數俳諧) 등을 중심으로 더욱 본격화해 갔다. 순간적인 은유, 패러디, 해학, 풍자, 연상 등의 창작 기법이 융합되어 완성되는 하이카이의 창작 세계 안에서 찰나적으로 읊었던 그의 하이쿠의 완성도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초인적으로 읊은 그의 일련의 시구들은 결국 산문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이 점에서 그의 소설 세계의 발상과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야카즈 하이카이 활동을 하는 와중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종의 여기(餘技)로 보이는 소설 창작을 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그의 첫 소설인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1682)이었다. 뜻밖에도 이 소설이 크게 호평을 받아 그는 40대에 들어서자 시인을 자처하면서도 동시에 우키요조시 작가로서 많은 소설 작품을 만들어 내게 된다.
사이카쿠는 1688년에 이르러 일본 최초의 경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본 작품 ≪일본영대장(日本永代藏)≫을 발표한다. 해설의 <≪일본영대장(日本永代藏)≫에 관해>에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주로 상인들의 경제생활을 주제로 하는 이른바 조닌물(町人物) 중 첫 작품이다. 이후에는 사후 간행된 ≪사이카쿠 오리도메(西鶴織留)≫를 비롯해 본격적인 서간체 소설인 ≪수많은 편지 뭉치들(萬の文反古)≫을 집필했고, 섣달 그믐날을 작품의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중·하류층 상인의 경제 생활상을 집단적 묘사의 형식으로 창작한 ≪세켄무네잔요(世間胸算用)≫와 상인의 향락 생활의 말로를 그린 ≪사이카쿠 오키미야게(西鶴置土産)≫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사이카쿠는 1693년 8월 10일, “부세라는 달맞이 구경을 하고 지낸 마지막 2년(浮世の月見過しにけり末二年)”이라는 사세(辭世)의 구를 남기고 52세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

[eBook] 남색대감: 무사편
[eBook] 남색대감: 무사편
지식을만드는지식
[eBook] 일본영대장
[eBook] 일본영대장
지식을만드는지식
[eBook] 호색일대남
[eBook] 호색일대남
지식을만드는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