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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Paul Klee

국외인물오른쪽 화살표 아이콘문화예술인오른쪽 화살표 아이콘미술가/화가

출생1879년

사망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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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독일 화가로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다. 21세에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 R.바그너와 R.슈트라우스, W. A.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8~1901년 독일의 뮌헨에서 세기 말의 화가 F. 슈투크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1911년 칸딘스키, F. 마르크, A. 마케와 사귀고, 이듬해 1912년의 ‘청기사’ 제2회전에 참가하였으나 1914년 튀니스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 떠 새로운 창조세계로 들어갔다.청기사파, 바우하우스 등과 관계를 맺었으나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특정 미술 사조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1921년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교수가 되었고, 후에 뒤셀도르프 미술학 교수가 되어 1933년까지 독일에 머물렀으나 독일에서는 나치스에 의한 예술탄압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급진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클레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바우하우스의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1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몰수당했다. 그러자 독일에 환멸을 느끼고 스위스로 돌아갔다.그의 작품은 구상적인 미술양식과 추상적인 미술양식 모두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미술 사조에 속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클레는 작품에서 엄격한 입방체와 점묘법, 그리고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으며, 그가 접했던 모든 미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14년에 그는 동료 화가들인 루이 무아예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다. 클레는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라고 표현했다. 클레는 일찍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는 그의 미술 작품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빨강의 푸가〉(1921)와 〈a장조 풍경〉(1930) 같은 많은 작품들을 음악적인 구조로 정돈했는데,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들을 정확히 배열했다. 저술에는 바우하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조형사고(造形思考, Das bildnerische Denken)》(1956) 《일기(Tageb?cher)》(1957)가 있다. 작품수장집은 스위스의 베른미술관 내 클레재단에 약 3,000점이 소장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