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칼빈John Calvin
인물소개
16세기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프랑스 누아용에서 출생하고 12세 때 이미 성직록을 받았으며, 14세에 파리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논리학, 라틴어를 수학한(1523-28) 후 오를레앙 대학과 부르쥐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는데, 이 무렵 볼마르(M. Wolmar)와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1532년 라틴어로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을 썼으며, 이듬해 교회를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회복시키라는 신의 명령을 듣는 체험을 한 후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였다. 1534년 노용으로 돌아가 성직록을 포기한 후 한때 투옥당했으며 프랑수아 1세의 프로테스탄트 추방령이 내리기 직전인 1535년 스위스 바젤로 피신했다. 이 기간 동안 당시 프랑스 국왕인 프랑수아 1세에게 참된 기독교 신앙을 전하고 박해받는 신교도들을 옹호할 목적으로 불후의 명작인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여 1536년에 출판했다. 같은 해 제네바를 여행하던 중 파렐(G. Farel)의 요청으로 제네바 종교개혁에 참여하였다. 그의 개혁정책이 제네바 의회와 인근 도시국가인 베른의 반감을 사 칼빈은 부득이 독일의 슈트라스부르크로 가서 프랑스인 교회를 맡아 보면서 루터파의 멜란히톤(P. Melanchton), 부처(M. Bucer)와 교류했다. 독일에 가 있던 3년 동안 로마서 주석을 썼으며, 프랑크푸르트, 하게나우, 보름스, 레겐스부르크 등지에서 모인 종교 회합에 참여했다. 1541년 시민들의 요청으로 제네바에 귀환한 칼빈은 의회와 교회를 장악하고 이후 14년 동안 강력한 신정정치를 폈다. 정치·종교적 권한이 집중된 목사회를 통해 시민들의 종교·윤리적 생활을 엄격하게 감독하였다. 이후 칼빈은 다른 유럽 국가에 같은 종교개혁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 프로테스탄트 피난민에게 숙소를 제공한 것이라든지, 프랑스 피난민을 훈련시켜 다시 프랑스로 파송해 비밀로 개혁교회를 설립하게 한 것 등이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개혁교회 신학을 정립했으며, 신약과 구약 대부분의 주석을 집필했다. 스코틀랜드의 한 신학자는 칼빈이 보통 신학자가 500년이 걸려서 할 일을 50년만에 다 해냈다고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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